“책 속에서 책과 함께 놀면서 행복하게 자라는 아이. 나는 내 자식이 이런 아이로 자라기를 꿈꾸었다.” 비단 시인 도종환만의 바람이었을까.
이 땅의 부모라면 누구라도 가질 바람. 내 아이가 책 읽는 아이가 됐으면….
사실 아이들의 책 읽기 중요성에 대해서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독일 작가 하인리히 만이 지적했듯 어느 “누구도 책으로 둘러싸이지 않은 곳에서 아이를 키울 권리는 없”을뿐더러, “책이 없는 집은 창이 없는 방과 같다”는 그의 말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책 읽기 중요성을 논하는 것은 찐방에 앙꼬가 들어가야 하는지를 논하는 것마냥 의미 없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상황은 아이들의 책 읽기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독서이력까지 입시에 반영한다고 하니 그 중요성(?)이 더더욱 중요해지게 된 것이다. 초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기교육에서조차 책 읽기는 필수 과목이 되었다. 정작 왕성하게 지식을 얻고 토론해야 할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책 따위’를 읽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테니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입시논술을 대비한 긴 장정을 위해 책 읽기도 때맞춰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더 그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책 읽기를 가르칠 수 있다? 어떻게?
궁금한 점은 어떤 방법으로 책 읽기를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가 하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추천 도서목록 속 책들을 순서대로, 연령대에 맞춰, 차곡차곡, 읽어 나가면, 책 읽는 아이들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이에 대한 박영숙 관장의 생각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이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책을 빼앗고 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책을 읽고도 똑같은 크기로 네모 칸이 그려진 종이에 독후감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걸로 과연 책 읽기를 ‘가르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훈련이 될지는 몰라도 책 읽는 게 즐거워 아이들 스스로 읽고 싶어지는 건 어림없다.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려고 들인 노력과 시간이 오히려 아이에게서 책을 빼앗고 말지도 모른다.”(본문 55쪽)
한편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는 ‘책 읽기에 대한 열 가지 권리’를 선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다시 읽을 권리,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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