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은 인권 의학이다
미국 드라마 〈CSI〉나 호평을 받은 드라마 〈싸인〉의 영향으로 과학수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사람들에게 법의관은 과학 지식으로 업그레이드된 현대판 셜록 홈즈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범인이 남긴 미세한 흔적들을 모아 추악한 사건의 전체적인 상을 재구성해내는 추리력과 상상력에 짜릿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법의학의 태두 문국진은 과학수사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정의한다. “법의학은 인권을 위한 학문이다”라는 것이다.
잠시 시간을 50여 년 정도 뒤로 돌려보자. 한국전쟁 후의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어슬렁거리던 대학생 문국진은 후루하다 다네모도古畑種基가 쓴 《법의학 이야기法醫學の話》의 다음 구절에 ‘홀딱 반해버린’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임상의학이라면,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은 법의학이다. 법의학은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발달된 민주국가에서만 발달한다.”(75쪽) 의대 청년 문국진의 가슴은 뛰었다. 민주화와 인권에 대한 열망이 수많은 의학 분과 가운데 ‘하필이면’ 법의학의 길로 그를 이끈 것이다.
사실 한국 인권사에서 과학수사는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길고 어두운 독재 시기의 보편적인 수사방법은 다름 아닌 ‘고문’이었다. 수사관들은 물리력을 바탕으로 증언을 수집했고, 이는 법정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수많은 운동권 학생의 참혹한 사연들은 이러한 사법 시스템 아래 양산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과학수사 도입이 갖는 의미는 컸다. 물리력은 지식과 추론에 의해 대체되었고, 증언에 앞서 증거가 우선시되는 변화를 몰고 온 것이다. 한국에서 그 최초의 사건은 일명 ‘윤 노파 살해 사건’이며, 그 중심에 문국진이 있었다. 법의학이 인권 신장을 위한 신호탄을 쏜 순간이었다. 이후로 고문의 불가피성이라는 논리가 급속도로 설 자리를 잃어갔다.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기고, 흔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 사회가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태산북두, 법의학의 새 길을 개척하다
그는 척박한 불모의 땅을 헤치고 나아갔다. 두벌죽음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법의학에 대한 인식과 배려는 거의 전무했다. 스승 장기려 박사도 법의학을 하겠다는 그의 말에 화를 냈다고 한다. 대학과 직장에서도 법의학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최초’가 될 수 있었고, 그가 지나간 자리가 곧 길이 되었다. 《최신법의학》이라는 법의학의 필수 교과서도,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