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 그 고상한 이미지에 대한 발칙한 검증
선비는 개인으로서는 전인격체의 이상적인 인간상이었으며, 사회적으로는 독점적 지배층이자 유일한 지식인 계층이었고, 정치적으로는 500년 조선왕조의 오랜 실세들이자 주인공들이었다. 따라서 어느 특정 사안만을 드러내어 마치 그것이 선비의 전체 이미지인 것처럼 단정하고 평가해버리면, 선비의 실체를 설명하는 데에는 과장과 왜곡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에 저자는 선비들이 중요시한 덕목, 유교 이론, 그들의 생활 모습, 그들이 중요시한 가치관, 그들에게 주어진 지위와 직책에 대한 임무 수행 능력, 그리고 그들이 지배한 조선의 실상 등을 종합해 선비를 분석하고 평가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그동안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던 기존의 선비 평가를 뛰어넘어 선비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꾀하고 동시에 500년 동안 조선을 통치한 위정자로서 그들의 모습을 규명하고자 한다.
선비가 권력을 잡으면 나라가 좋아질까
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선비에 대해 다양하게 정의하고 평가했지만 유교적 가치와 덕목을 지키는 것을 지상과제로 하며 살아온 그들을 한 마디로 단언하기란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선비를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유교적 지식과 윤리로 무장하고 지배층을 형성한 최고 엘리트 집단, 곧 사대부”로 정의한다. 선비는 곧, “성리학적 가치를 체득하고 실천한 유학자와 그 학생들로 조선시대라는 특정 기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한 특권 지식인 계층”이다. 그러나 이렇게 유교적 가치와 덕목으로 무장하고 경제력과 지식뿐 아니라 정치권력까지 독점한 선비들이 지배한 조선은 가난했으며, 왜란과 호란 동안 국가의 존망이 백척간두에 섰을 정도로 군사력은 약했고, 민심은 조정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선비들은 조선이 당면한 문제들과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그들은 왜란과 호란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겪었으면서도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와신상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조선의 부국책에도 진정 어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선비들의 지조와 의리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지조와 의리는 선비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개념으로 실제로도 조선의 선비들이 목숨보다 중시한 유교 덕목들 중 하나다. 선비들이 의리를 가장 잘 실천한 예로 의병 활동을 꼽을 수 있는데, 저자는 ‘난신적자를 처단하기 위해 일어난’ 의병은 실제로 ‘명나라가 주도하는 중화 질서 혹은 중화 문명을 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