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릴 지브란(Khalil Gibran)은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예술가이며, 시인, 작가이었다. 그 당시 오토만 시리아의 영토이었던 근대 레바논의 브샤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미국에서 예술을 공부하고,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1923년작 예언자는 영어 산문체로 쓴 철학적 에세이 연작 중 하나이다. 영감이 넘치는 창작의 초기 사례에 해당하는 이 책은, 냉담한 비평적 평판을 받았지만, 잘 팔렸고, 1960년대 반(反) 문화의 창작물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되었다.
지브란은 오늘날 레바논의 북부에 위치한, 기독교 분파인 마론 교회의 신자들이 모여 사는 브샤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마론파 가톨릭 성직자이었다. 그의 어머니 카밀라는 서른 살에 지브란을 낳았다. 그의 아버지는 이름이 칼릴이었고, 어머니에게는 세 번째 남편이었다. 가정이 가난했기 때문에, 지브란은 어린 시절에 어떠한 정규 교육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성직자들이 정기적으로 그의 집을 찾아와 그에게 아랍어와 시리아 언어로 기록된 성서를 가르쳐 주었다.
지브란의 아버지는 약국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도박으로 진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오토만 정부에서 임명한 지방의 관리 또는 장군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의 통치에 대해 화가 난 백성들의 불만이 확산되었기 때문에, 행정관은 지브
란의 아버지를 1891년 경에 관직에서 쫓아냈다. 지브란의 아버지는 횡령 혐의로 감옥에 갔고, 오토만 황제의 관리들은 그의 가족이 지닌 재산을 몰수하였다. 머무를 집조차 없는 상황에서, 지브란의 어머니는 그녀의 친척을 뒤따라 미국으로 이민 가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브란의 아버지는 1894년에 감옥에서 풀려 났지만, 카밀라 지브란은 한 번 내린 결정을 바꾸지 않았고, 아들 칼릴과 칼릴의 어린 여동생들인 마리아나와 술타나, 그리고 칼릴의 이복 형제인 피터를 데리고 1895년 6월 25일 뉴욕으로 향했다.
지브란은 보스턴의 사우스 엔드에 정착했다. 그 당시 그 곳에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시리아/레바논계 미국인 공동체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여자 재봉사로 일하기 시작했다.[6] 그의 어머니는 레이스 장식이 달린 옷과 아마포로 만든 옷을 팔려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녔다. 지브란은 1895년 9월 30일에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 당국은 이민자를 위한 영어 학습 과정에 그를 배정하였다. 지브란은 정착촌 주변에 있던 예술학교에도 등록하였다. 그 학교의 교사를 통해서 그는, 아방가르드 보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