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한국인의 삶과 몸, 질병에 대한 역사·인류학적 보고서
1. 한국사 전대미문의 혼란기 1945-1953. 한국인의 몸은 무엇을 겪었을까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는 순간부터 1953년 7월 한국전쟁 종전까지 8년간은 한국 근현대사상 전대미문의 혼란기였다. 40여 년간 지속된 일제의 통제와 강압이 끝남과 동시에 식민지 사회를 지탱해온 질서도 함께 무너졌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해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의 치안과 행정체계는 일시에 무력해졌고, 수많은 정당이 만들어졌으며 저마다 새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당장 그들은 어떤 질서도 스스로 만들어낼 능력이 없었다. 조선총독부의 권력은 한국인을 거치지 않고 바로 미군에게 옮겨갔고, 그해 말 신탁통치 문제가 불거진 뒤로는 이념대립의 골이 깊어졌다.
한편, 해방과 동시에 거대한 인구이동의 파도가 한반도를 덮쳤다. 해방 무렵 해외 거주 한국인은 300만 명이 넘었다. 만주와 일본, 중국 남동부 해안지대와 내륙지대까지 많은 한국인이 나가있었고,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에는 남양이라 불린 동남아시아와 필리핀 일대에도 군인이나 징용노무자로 끌려가 있었다. 해방 후 1년 동안 이들 중 230만 명 이상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또 정치적인 이유로 50만 명 이상의 북한주민이 38선을 넘어 월남했다. 한편, 대한민국 수립을 전후해서는 좌익폭동과 빨치산 활동에 대응한 군경의 진압작전이 또 다른 ‘전재민’들을 양산했다. 1950년 초까지 제주도와 여수 순천 일대를 중심으로 8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일자리를 위해 이곳저곳 배회하며 방랑하는 사람들, 먹을 것을 구걸하는 사람들, 거의 매일 같이 열린 대규모 정치집회에 모여드는 사람들, 갑자기 폭증한 도시인구 수용을 위해 급조한 임시수용소에 몰려드는 사람들, 그마저 얻지 못해 아무 곳에나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사람들. 서울은 부유하는 인간 군상의 도시였다. 위생이나 보건문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굶주린 채 우왕좌왕하는 군중들 사이에서 세균과 바이러스가 제 세상을 만난 듯 활개 치기 시작했다. 페스트와 콜레라, 두창, 디프테리아, 장티푸스 등 각종 전염병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창궐했다. 1948년에 태어난 44만 명의 아기 중 돌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수는 무려 18만 명, 40퍼센트에 달했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핵무기를 제외한 당대 최신의 살상무기가 총동원된 새로운 전쟁이었다. 전쟁 중 미 극동공군은 폭탄 46만 톤, 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