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삶을 이해하는 사회적 인식 또한 부족한 시대적 상황에서 눈물을 삼키며 아픔을 아프다 표현할 수 없었던 옹이 같은 곡진한 사연들을 가슴 울리며 써내려간 찬란한 삶의 통증은 지친 우리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동안 함께 해주신 안내면 어머님들과 최영옥 선생님, 옥헌 김동규 님, 김성원 님 정천영 화백님, 홍승운 화백님 그리고 무한 애정으로 시평을 해주신 송찬호 시인님, 신성주 시인님 옥천민예총 문학 분과 회원들께 쪽빛하늘의 사랑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계절의 시계도 어머님들의 시간도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들녘의 곡식들처럼 풍요로움으로 가득했으면 합니다. 떠나는 안타까움이 있기에 삶은 더 아쉽고 간절하고 소중합니다.
‘느덜, 있을 때 잘혀.’
바람 많은 이 땅에 말없이 버팀목이 되셨던 어머니들.
늦게 핀 가을꽃처럼 남은생도 은빛날개 펼치시며 주름골짜기마다 하얗게 수놓은 구절초 향으로 건강하고 행복하소서!
시방.
― 황예순(엮은이), 책머리글 <시집을 펴내며> 중에서
할머니는 왜 결혼을 안 했느냐는 증손주의 말에 먼저 간 남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는 김선호 할머니, 딸네 집에 왔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길에 군밤 한 봉지 사주셨는데 그 길이 마지막 길이었다는 김순이 할머니, 시골이 싫어도 살다가 보니 손자가 열다섯에 생각만 해도 즐거워진다는 김오영 할머니, 팔십 평생 모르던 글이 태장봉보다 높았는데 알고 보니 신기하다는 염금옥 할머니, 삼 년 전 이백만원 주고 소를 사서 아픈 허리 다리 끌고 짚 먹이고 사료 먹여 지금도 이백만원이라며 허망해 하는 윤옥분 할머니, 먼 나라 간 손자도 보고 싶고 먼저 간 남편도 보고 싶어 자꾸만 논둑을 깎는다는 이순한 할머니, 아픈 다리 끌고 캐온 냉이 빙 둘러 앉아 함께 먹이니 봄이 맛있다는 이척례 할머니, 텃밭에 고춧모 보고 생각나 한 줄 쓰고 감자꽃 보다 생각나 한 줄 쓴다는 전경임 할머니, 6.25때 포탄알 이고 30리를 걸었다는 이정화 할머니, 송아지 떼어놓은 어미소에게 밥을 줘도 우는 걸 보니 떨어지는 아픔은 사람도 매한가지라는 정영숙 할머니, 혼자 몸으로 애들 다 결혼시켰으니 먼저 간 남편에게 ‘고생했다고 한 번만 말 해달라.’는 최종예 할머니, 공공근로에 나가 풀베기하며 너무 더워 언제나 가을이 올까 기다리는 홍종예 할머니, 칠십은 희망나이라는 황연자 할머니 등……. 어느 한 분, 그 사연이 애틋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할머니들의 마음밭이 뽕나무밭에서 망망한 바다가 된 느낌이다. 모래밭 위에 위대한 피라미드를 쌓은 느낌이다. 평균연령 79.2세의 할머니들이 젊은 시인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시를 쓰다니……. 시가 지팡이를 내던지고 사람을 꼿꼿이 일으켜 세우게 한다. 고목나무에 꽃을 피우게 한다. 기교나 미사여구 대신 경험적 진실을 통하여 관조의 언어로 쓰여진 이 시집은 인생이 순응하며 견디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늦은 나이에 마음의 집을 짓고 영생을 누리실 할머니들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드린다.
― 김순진(문학평론가), 서문 <인생은 순응하며 견디는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