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유(陸游, 1125∼1209)
남송대(南宋代)의 시인으로, 자(字)는 무관(務觀)이고 호(號)는 방옹(放翁)이며, 월주(越州) 산음현[山陰縣,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소흥시(紹興市)] 사람이다. 북송(北宋)과 남송(南宋)의 교체기에 태어났으며, 남송 조정이 중원(中原) 지역을 금(金)에 내어주고 굴욕적인 화친책을 통해 겨우 명맥을 유지해 가던 시기에 일생토록 금에 대한 항전과 실지(失地)의 회복을 주장하며 살았던 시인이다. 그의 불굴의 기상과 강인한 투쟁의식은 그의 수많은 우국시를 통해 끊임없이 표출되었으며, 그 헌신성과 진정성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우국시인(憂國詩人)으로 추앙받고 있다. 아울러 전후로 도합 1만 수에 달하는 시를 남기고 있어 중국 최다작(最多作) 작가로서의 명성 또한 지니고 있다.
주기평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육유 시가연구(陸游詩歌硏究)』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이화여대·가톨릭대·안양대·서원대·방송통신대 등에서 중국어와 한문 및 중국역대시가와 중국역대산문 등을 강의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 있으며 『심양일기』, 『소현동궁일기』, 『소현분조일기』 등 조선시대 왕세자일기를 공동번역하고 있다. 주요논문으로 「육유사(陸游詞)의 주제 및 창작관에 대한 고찰」, 「서술구조를 통한 이릉시(李陵詩)와 소무시(蘇武詩)의 창작시기 고찰」, 「중국 도망시(悼亡詩)의 서술방식과 상징체계」, 「남송 강호시파(江湖詩派)의 ‘시파(詩派)’적 성격 고찰」, 「한국에서의 한시교육(漢詩敎育)의 현황과 개선방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