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벙어리삼룡이 外

나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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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삼룡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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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나도향은 1922년에 작품을 발표하여 소설가로 활동하다가 불과 4년 뒤인 1926년에 요절한다. 그래서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넘어간 지점에서 충분히 작품을 선보일 시간이 부족했다. 
그는 습작기를 거쳐 20년대 초반 삼일운동이 실패한 뒤 주류를 이뤘던 병적인 낭만주의에 영향을 받는다. 더구나 당시는 서구에서 낭만주의가 수입되어 온 시기였다. 《백조》 동인을 중심으로 지독한 슬픔을 토로하는 낭만주의가 우리 문단에 활발했던 때였다. 도향 역시 실의에 빠진 다른 문인들처럼 감상성을 띠며 이유 없는 슬픔을 탐닉하는 문학적 경향을 보인다. 
“저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우선 누님 누님하고 눈물이 날만치 감격의 떨리는 목소리로 누님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그것도 한낱 꿈일까요? 꿈이나 같으면 오히려 허무로 돌려 보내일 얼마간의 위로가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도 꿈이 아닌가? 하나이다.”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의 일부다. 객관적 시점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중점을 두면서 그것을 마음껏 표출하는 것이 보인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정제된 자기 세계를 펼쳐야 할 소설가에게는 덕목이 되기 힘들지만, 당시 문학적 특수 상황을 고려할 때 오히려 20년대 문단의 태도와 고민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도향의 작품세계는 1925년 사실주의 경향을 띠는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로 대표된다. 그의 짧은 문학 생애의 절정기인 셈이다. 이 작품들에서는 하나같이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드러내면서 낭만주의 시절 격렬했던 자기 토로의 한계를 극복하는 성과를 낸다. 
〈물레방아〉는 신치규라는 지주가 이방원의 아내를 꼬드겨 빼앗는 과정에서 전통 농촌사회의 성 윤리관이 급히 변하고 가난과 물신주의가 커지면서 뒤틀어진 20년대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벙어리 삼룡이〉는 오생원댁에 삼룡이라는 벙어리 머슴의 애틋하고도 이뤄질 수 없는 마님을 향한 사랑과 불의의 사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것이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계급의식과 부당한 처우를 오롯이 드러낸 점에서 사실주의 문학으로 엄정한 가치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뽕〉은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안협집과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무능한 남편인 김삼보, 안협집의 몸을 노리는 머슴 삼돌이 사이의 희극적인 사건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 이러한 상황 자체가 주는 부조리는 당시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것을 잘 드러내 준다. 
이번 소설에서는 이 세 편의 대표작과 함께 초기 도향의 낭만주의를 보여주는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 그리고 26년 도향이 죽기 두 달 전에 썼던 사실주의 작품인 〈지형근〉까지 총 5편을 실었다. 
도향의 정수를 담은 작품과 함께 그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1920년대 우리 문학사에 남아있는 한 소설가의 짧았던 작품 생애를 느껴보자.

목차
벙어리 삼룡이 外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뽕 
   지형근 
   별은 안거든 울지나 말걸 
나도향(羅稻香)

작가 소개
  • 작가나도향
나도향 [羅稻香] (1902~1926)

일제강점기 때 소설가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경손(慶孫), 필명은 빈(彬)이며, 도향은 호이다. 서울의 유명한 의원 집안의 의사 나성연(羅聖淵)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이름인 경손(慶孫)을 쓰지 않고 도향(塗香)과 빈(彬)을 즐겨 썼는데, 그것은 억압적인 가부장질서에 반감을 지니고 자기가 원하는 자신의 이름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경손’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경사스러운 손자’라는 뜻을 지닌다. 도향의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이름으로, 그렇게 되면 부모님조차 함부로 부르기 어려운 이름이 되어버린다. 나도향은 그런 이름의 무게에 답답해했다. 그래서 자신은 전근대적인 억압과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문인 동료들이 추천한 도향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이 이름에는 벼꽃의 향기를 의미가 담겨있다. 
이름에 관한 도향만의 일화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봉건적 질서를 가족 내에서 찾고 그러한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가족이라는 유교적 집단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서고 싶어 했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경성제대 의대를 중간에 그만둔다. 
그리고 문학 수업을 받으려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 일로 가족과 충돌하게 되고 생활비마저 끊긴 상황에서 결국 한국으로 되돌아온다. 192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소설 습작에 힘을 쏟는다. 
1922년에는 현진건, 홍사용, 이상화, 박종화, 박영희 등과 함께 《백조(白潮)》 동인으로 참여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에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에 이어 11월부터 장편 〈환희〉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는 한편, 〈옛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를 발표하였다. 특히 〈환희〉로는 대중의 사랑을 받아 작가로서 나도향이라는 이름을 세간에 알리게 된다. 1923년에는 〈은화백동화〉, 〈17원50전〉, 〈행랑자식〉을 발표했고, 1924년에는 〈자기를 찾기 전〉, 1925년에는 〈벙어리 삼룡〉, 〈물레방아〉, 〈뽕〉 등을 세상에 내놓았다. 
한국나이로 스물다섯 살 때 요절하는 바람에 작품이 많지 않다. 폐병으로 인한 병사였다.
도향의 작품은 많지 않지만 짧은 시기 동안 비교적 대비를 이루는 활동을 했다. 초기에는 작가 지망생으로서 주관적 감정을 토로하는 것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해 발표작들의 완성도가 낮다. 일종의 습작기 작품으로 객관화된 '나'로 형상화되지 못한 인물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다가 〈행랑자식〉이나 〈자기를 찾기 전〉과 같은 작품부터 빈곤한 현실을 정면으로 다루며 냉혹한 사회를 보여주려고 한다. 주인공들은 사회의 치부와 대결하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도향의 작품이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넘어가는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그 성과물로 〈벙어리 삼룡〉, 〈물레방아〉, 〈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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