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仁)은 인간에게 가장 편안한 정신적인 집이고
의(義)는 인간에게 가장 정확한 올바른 길이다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단위로 계산해 볼 때 서로 1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맹자가 이 세상에 태어난 해는 이미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언 1백여 년 가까이 되었을 때였기에 공자의 가르침을 직접 배울 기회는 없었지만, 공자의 사상을 배워 공자를 이상적인 성인으로 여겼다.
공자와 맹자 모두 현실 정치에 진출하려던 열망을 갖고 있던 데서 알 수 있듯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한 사상, 세상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정립하고 현실 속에서 펼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만큼 그들의 사상은 자기 성찰과 성숙한 깨달음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알려주는 역할을 현재까지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공맹이 우리들을 가르치는 방식은 제때 내리는 비가 땅을 촉촉하게 하듯 감화하는 방법, 덕을 기르도록 돕는 방법, 재능을 키우도록 돕는 방법, 질문에 대답해 주는 방법, 스스로 덕을 배우도록 하는 방법으로 이 다섯 가지가 곧 군자의 교육 방식이다. 군자의 교육은 올바른 인과 의를 깨닫고 추구하게 하고자 함이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가장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후대 사람들은 공자가 만들고 맹자가 계승한 유가를 두고 ‘공자와 맹자의 도’라 일컫는다. 이렇게 두 사람은 2천 년이 넘는 역사의 흐름 속에 함께 호흡해 오고 있다.
사람을 진심으로 탄복시키고 감히 대립하지 못하도록 해야 천하의 법칙이라 할 만하다
장자는 관직을 지내며 지방 관리의 모범이 되기도 하였으나 곧 관직을 내려놓고 은거 생활에 들어갔다. 당시의 사회 현실과 속세의 생활에 불만과 염증을 느끼게 되면서, 속세의 굴레에서 벗어난 정신적인 자유를 추구한 도학(道學) 연구에 몰두한 것이다. 장자가 말하는 ‘도(道)’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어떠한 것에도 침해받지 않는 자유ㆍ독립적인 사람의 주체 정신을 가리킨다.
또한 장자는 천하를 대할 때는 ‘무위(無爲)’로 너그럽게 대해야지 유위(有爲)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무위로 다스리면 천하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본성에 따라 순박한 도덕성을 지키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본성에 따라 순박한 도덕성을 지킨다면 따로 다스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익과 의로움을 들어 좋고 싫고, 옳고 그름을 따짐은 입으로만 남을 탄복시킬 뿐이다.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는